타인의 얼굴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아베 코보 작가의 소설 모래의 여자. 소설 첫 부분부터 내용이 흥미로워 쉽게 쉽게 읽혔다. 아베 코보 작가는 일본의 카프카로 불리는 초현실주의 작가라고 한다. 학창 시절 및 군 복무 시절 무라카미 하루키, 이사카 코타로, 히가시노 게이고 등 유명 일본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일본 소설에 관심을 가졌었는데, 아베 코보라는 유명한 작가의 책은 작년 우연히 누군가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대략적인 스토리는 일본의 어떤 곤충채집이 취미이고 직업이 선생인 한 남성이 휴가를 내서 한 작은 지방으로 희귀 곤충을 채집하러 떠나면서 시작된다. 그러다 밤이 늦어 불시착한 동네에 하룻밤을 묵게 되면서 그의 감금 생활은 시작된다. 그날 밤 그는 마을 이장의 안내를 받아한 과부의 집에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과부의 집은 마을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모래 사구로 된 지역에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매우 건조하고 음식에서도 모래가 씹히는가 하면 과부는 밥 먹을 때도 우산을 건네며 쓰고 있으라고 한다. 그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하룻밤을 보내는데, 과부는 밤새 다른 마을 남자들과 모래를 퍼 나르고 아침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다음날이 되어 남자는 다시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사다리가 있던 곳으로 가자 사다리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그는 소리 질러 사람을 불러보았지만 대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는 마을 이장과 다른 사람들은 그를 앞으로 마을을 위해 모래를 치우는 역할을 시키기 위해 감금시켰던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마을은 특이한 구조로, 사막지역인데 모래바람이 밤새 휘몰아쳐서 과부가 사는 곳에서 싸이는 모래를 밤새 퍼내지 않으면 마을 전체가 모래로 휩싸여버리는 구조이다. 처음에 그는 현실을 부정하고 하루 종일 빈둥대었지만, 이장은 그런 그에게 물과 음식을 주지 않았고, 결국 그는 포기하고 매일 밤 과부와 함께 모래를 퍼내는 삶을 살게 된다.
처음에 남자는 어떡해서든 탈출하려고 기회를 틈타, 결국 탈출에 성공하지만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마을 남자들에게 잡혀 결국 다시 감금되게 된다.
몇 년의 시간은 흘러가고 마을 이장은 주인공 남성이 열심히 일하게 하기 위해 라디오를 보상으로 주고, 그러한 소소한 즐거움을 얻으며 과부와 함께 지내면서 과부는 임신까지 하게 된다. 주인공 남자는 모래를 퍼면서 한편으로 계속해서 연구를 거듭하여 결국 자체적으로 물을 얻을 수 있는 유수 장치를 고안해 마을이장의 도움없이 물을 확보할 수 있게된다. 그리고 탈출은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며 자신이 개발한 유수장치를 자신을 가둔 그 마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즐거운 상상을 하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모래를 계속해서 퍼내야 하는 마을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이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쉽게 예를 들어 말하자면 그것이 알고 싶다 TV에 나왔던 소위 말하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노동을 해야 하는 염전 노예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학교 선생인 주인공 남성이 우연히 취미인 곤충채집을 갔다가 감금되게 된다는 설정부터 재밌는 소설이다. 스토리는 위에 간략하게 썼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남자와 과부 간의 대사 및 심리묘사가 정말 탁월하고 재밌고 이야기 전개력도 너무 재밌어서 정신없이 읽게 된다. 특히 마을을 탈출하는 과정은 정말 영화 못지않는, 말하자면 탈북인들이 며칠밤을 새고 지뢰밭을 피해서 남한으로 왔다는 스토리를 듣는 것처럼 정신없이 빠져들게 된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주인공의 탈출을 응원했을 것이고 나 또한 그랬으며 당연히 탈출한 후 경찰들을 대동해서 그 마을의 악인들을 일망타진하는 카타르시스를 주는 엔딩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독자들의 희망을 산산이 부숴버리고, 일말의 동정 없이 주인공 남성을 다시 그 모래지옥 속으로 감금시켜버린다.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선생이 밤새 삽으로 모래를 퍼야 하는 그것도 평생 그렇게 해야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물과 식량을 얻게 되는 삶을 살게 되는데, 염전 노예의 삶과 같이 끊임없이 강제노동을 해야 하는 너무나 무시무시한 지옥 같은 세상에서도 그는 결국 그 나름대로의 삶을 받아들이고 결국 거기에서 살게 된다. 작가는 소설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떤 힘든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자유를 향한 몸부림을 말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반대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주어진 환경에 굴복하게 되어있고 자신의 의지로는 빠져나갈 수 없는 개미지옥에서 생명이 다할 때까지 노동을 계속해야 하는 수동적이고 나약한 존재임을 말하고 싶었을까? 결국 마지막에 그는 자체적으로 물을 얻을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하기에 이르고, 그 자체에 너무나 기뻐하며 절호의 찬스임에도 불구하고 탈출은 뒷전이 된다. 그는 과연 탈출에 성공했을까? 소설 마지막에 7년간 행방불명이 된 주인공을 법원에서는 실종 처리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그가 탈출해서 원래 살던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갔던지, 아니면 모래의 여자와 아이를 낳고 그곳에서 계속 인생을 이어갔는지, 또 다른 결말이 있던지 작가는 그 결정을 독자들에게 맡긴다.
읽은 지 몇 달이 지난 지금 모래의 여자 책의 독후감을 쓰며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영화 빠삐용처럼 죽을 때까지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성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고, 나 같으면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 과연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여러 상상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주인공과 같이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결국 그것이 즐거운 것은 언제든 내가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언택트 코로나 시대에는 다시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은 전 국민이 같을 것이다 ㅎㅎ